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둑/한국의 역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이전 == 우리나라 바둑의 기원은 '[[순장바둑]]' 으로 [[삼국시대]] [[백제]]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다. 규칙에 대해서는 순장바둑 문서 참조. 그러나 이도 역사적으로 명확한 사실은 아니며 오히려 순장바둑이 [[조선]] 말기에야 나타났다는 의견도 있다. 바둑사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할 듯. 다만 순장바둑은 현재 사장된 룰이다. 광복 이후 한국 바둑의 [[갈라파고스화]] 방지 차원에서 한국 바둑의 룰을 일본식으로 갈아탔기 때문. 한국에는 가장 오래된 바둑에 대한 기록이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장수왕]]이 [[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내 개로왕과 바둑을 두게 하는 한편 백제를 염탐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 에 전해지고 있다. [[신라]]에서는 [[5세기]] 고분으로 추정하는 [[황남대총]]과 [[천마총]]에서 나온 자갈돌이 바둑돌로 사용된 것이었을 거라고 추정되고 있으며[* 이 자갈돌 유물을 실제로 보면 검은색과 흰색이 잘 구분되지 않는 자연석 상태라서 이게 어떻게 바둑돌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라고고학을 전공한 이은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장은 원래는 흑백으로 칠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며 고분 내 환경적 요인으로 칠이 벗겨졌거나 발굴 이후 세척 과정에서 칠이 지워진 것으로 주장했다.] 황남대총에서 같이 출토된, 이 바둑돌을 담았던 그릇으로 추정되는 중국산 칠기에는 3~4세기 중국 [[서진]]시대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10452059|바둑 고수로 '기성'(棋聖) 칭호를 받았던 마랑(馬朗)의 이름이 새겨져있기도 했다.]] 이러한 바둑 용품이 황남대총에 부장품으로 묻힌 것을 볼 때 황남대총의 주인공도 생전에 바둑을 좋아했고 이미 상대 신라에도 백제처럼 바둑이 보급된 것이 밝혀졌다. 한편 7세기 초에 사망한 신라 귀족의 무덤인 [[경주시]] 용강동 고분 6호 석실에서도 [[신라]] 때 바둑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갈돌들이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바둑은 성행해 [[궁녀]]들도 바둑을 취미로 많이 뒀다고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일단 정부 차원에서는 바둑을 기예(技藝)로서 하찮게 여겨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해보면 바둑의 폐해를 까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워낙 재밌다 보니 실제로 하는 사람은 계속 많긴 했지만, 국가 차원에서 바둑을 육성한 일본에 비해 근대 바둑에서 발전이 밀리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